top of page

Past  Works 1   1990~  모조된 아름다움 혹은 우울한 열정

self examination 65.1x53cm oil on canvas

self examination 65.1x53cm oil on canvas

self examination 65.1x53.0cm oil on canvas 1991 (2)

self examination 65.1x53.0cm oil on canvas 1991 (2)

for being one 45.5x37.9cm oil on canvas 1990 (2)

for being one 45.5x37.9cm oil on canvas 1990 (2)

self examination 65.1x53.0 oil on canvas  1992 (2)

self examination 65.1x53.0 oil on canvas 1992 (2)

self examination 65.1x53.0 oil on canvas  1991

self examination 65.1x53.0 oil on canvas 1991

self examination 65.1x53.0cm oil on canvas 1991

self examination 65.1x53.0cm oil on canvas 1991

for being one 65x50cm oil on canvas 1995

for being one 65x50cm oil on canvas 1995

an exression  162.2x130.3cm oil on canvas 1991

an exression 162.2x130.3cm oil on canvas 1991

a gateway 90.9x72.7cm oil on canvas 1992

a gateway 90.9x72.7cm oil on canvas 1992

모조된 아름다움 혹은 우울한 열정-최태만 평론의 부분임.

기술적 숙련성에 의해 만들어진 화려한 그래피즘, 이 아기자기한 이야기들로 수놓아진 작품은 다분히 여성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 특징보다 그의 작품을 보다 진지하게 만드는 것은 여잔히 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불안한 보호본능이다. 누가 그랬다던가. 아름답게 죽고싶다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그리고 지극히 감상적인 이 말은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말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아름답게 죽는다는 것보다 더 힘들지 않는가. 그러나 그 삶을 위해 그가 투여해야 할 노력은 실로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인생의 어려운 고비를 몇 개씩 넘어온 그에게 ‘아름다운 삶’은 무엇보다 그 자신이 스스로 지켜야할 약속이며 숭고한 목표이다. 그래서 그는 관용과 인내, 용서와 사랑의 방법을 배운다. 그의 그림은 일차적으로 자기사랑의 한 방식이자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삶의 실천을 위해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위장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보호본능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기를 이해하기 위해 그는 또 하나의 자신을 억압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 속에서 또 하나의 그는 항상 은폐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 속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청색조의 색체가 그의 이러한 심리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청색은 우울과 결핍, 창백함이란 정조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가라앉은 색체, 즉 사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이라 할 수 있다. 청색은 또한 동경과 향수를 자극한다. 그의 화면속에서 청색은 매우 지배적이지만 그것이 배타적이지는 않다. 수용과 침탈, 확산과 수렴, 상승과 정체의 갈등을 표현함에 있어서 청색만큼 적절한 것이 어디있을까. 이 색조는 끊임없이 자기자신으로 돌아오기를 요청한다. 그래서 그는 청색의 그 거울 속으로, 유리잔 속으로 꽃다발 속으로 바다물 속으로 한없이 빨려들며 급기야 그자신이 그것으로 전화되고 만다.

그의 최근 작품은 매우 설명적이며 소박하다. 그것이 그의 작품에서 돋보였던 회화성을 제거하는 요소가 될 수는 없지만 어떻게 보면 그는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과거에 그의 작품에서 표출하였던 심리적 가의눌림이 이런 방식으로 바뀌었다 할 지라도 나는 이 변화를 생의 환희에 대한 노래로서만 이해하고 싶지 않다. 화려함 뒤에 잠복된 우울한 정서, 불안과 고독, 긴장에 대해 나는 앞에서 이야기했었다. 그의 작품을 찬찬히 흝어 보노라면 그의 이 작품이 고통의 산물임을 알 수 있으리라. 생의 환희에 대한 예찬은 단지 그가 이르고자하는 목표일 뿐이다. 그는 그 과정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재하고자 한다. 그것이 끊임없이 자기자신 속으로 파고드는 이유이자 원인인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자기로부터의 해방임을 그는 알고 있다. 그것은 얼마나 힘겨운 자기와의 투쟁을 수반해야 하는가. 거의 자기최면에 가깝도록 자신에 대해 채근하는 그의 모습을 나는 그의 작품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제 한 사람으로 준재하기 위해.

최태만/미술평론가

  • Twitter Metallic
  • s-facebook
bottom of page